[기고] “군사도시에서 예술의 도시로 태어난 통영을 그리다” -3부-
[기고] “군사도시에서 예술의 도시로 태어난 통영을 그리다” -3부-
  • 충북경제
  • 승인 2019.07.0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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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주변 '동피랑'과 '서피랑'
[충북경제] 강동우 중원문화정책포럼 회장
[충북경제] 강동우 중원문화정책포럼 회장

[충북경제] 생활에 쫓기고 지쳐, 거친 길을 온 사람들에게 바다를 아늑하게 감싸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은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예술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되는 여러 예술가들이 ‘통영’을 고향으로 두었거나, 제 2의 고향으로 삼았다. 극작가 유치진(1905~1974), 시인 유치환 형제를 필두로, 화가 전혁림(1916~2010),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상옥과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모두 통영 출신 예술가 이다.

 

이 작은 도시가 20세기 초의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예술가를 낳았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바다의 도시, 군사도시로 출발한 통영의 거친 풍토에서 어떻게 내노라하는 예술계 거목들이 줄지어 나왔을까? 또한, 어떻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예품들이 제작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박경리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게 문답한다.

 

군사도시로 출발한 도시가 예술의 도시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군사와 예술 언뜻 서로 나란히 하기 힘든 단어들 같지만 통영에 설치되었던 12공방을 생각하면 의문이 풀린다.

 

통제영 12공방은 ‘세병관’ 뒤 옛 통영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장인들의 작업장이다. 초대 통제사인 ‘이순신’이 시작했다고 전하는 통제영 공방은 군수품 및 생활품을 자체 조달하였고, 나라에 바치는 진상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이였다.

 

각 공방에는 장인들의 우두머리인 편수(片首)가 1~2명이 있고, 적게는 1명 많게는 82명의 장인들이 배속해 있었다고 한다. 팔도에서 모여든 그들은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도시는 무수한 사람들이 살다 가는 곳이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그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기 속으로 증발한다. 그리고 그들은 잊혀진다.

 

그러나 역사에 굵은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도시 공간에 남긴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회상됨으로써, 영원히 전해진다. 그래서 인물과 역사를 오래 기억하려면 회상의 단서가 되는 것들을 유지해야한다.

 

우리가 도시에서 유서 깊은 공간과 건물을 보호하려는 것은 바로 그곳에 새겨진 인물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지금 뉴타운이니 뭐니 해서 회상의 단서들을 다 쓸어버리는 재개발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것은 건물과 공간의 조직만이 아니라 도시에 대한 인간의 기억까지 파괴한다. 우리 모두를 기억상실증 환자로 만들려 하는 것 같다.

 

“도시의 주변 ‘동피랑’과 ‘서피랑’"

 

통영 도시 중앙에 자리 잡은 최고급 주거지 간창골을 사이에 두고, ‘동피랑’과 ‘서피랑’이라는 주변 공간이 마주보고 솟아있다.

 

서민들의 마을이라 ‘동피랑’과 ‘서피랑’은 땅을 깊숙이 파고들어온 통영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벼랑, 곧 언덕배기에 있다. 경사가 급한 지형 덕에 집들이 밀집해 있어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집들에 질서를 부여해주는 것은 같은 높이의 지점을 잇는 등고선이다.

 

도시의 집이란 땅과 관계없이 죽죽 그은 선을 따라 지어지기 마련이라는 우리의 섣부른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다. 해안선은 등고선 높이가 영이 되는 지점을 이은 선이다. 그것과 입체적으로 나란히 그어진 등고선을 따라 들어 앉은 집들은 자연히 해안을 바라보게 된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가장 긴장되고 극적인 순간을 집 마당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동피랑’과 ‘서피랑’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두 주거지의 ‘같음’에 균열이 생기고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서피랑’에는 오래된 집들과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 보인다. 예쁜 담쟁이 넝쿨이 담을 장식한 집들도 있다. 집들은 집보다 낮은 곳에 겸손하게 자리잡아 작은 마당에 있는 화분과 꽃나무가 열린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인다.

 

그런데 ‘동피랑’에서는 최근 이런 전경들이 깨지고 있다. 길로 온몸을 드러내는 뻣뻣한 집들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벼랑을 오르는 길을 넓혀 찻길을 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길로 나오지 못한다.

 

‘서피랑’과 달리 ‘동피랑’에서는 공간의 변화와 재미 그리고 다정함이 차에 밀려나고 만 듯하다. 한때 통영시는 ‘동피랑’ 꼭대기에 있던 ‘동포루’를 복원하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집들이 철거 될 위기에 놓이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공미술 작업으로 집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이로써 황당한 계획은 연기되고, ‘동피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부 끝-

 

[충북경제 ]'동피랑' ㅡ 집들은 작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등고선을 따라 다닥다닥 모여있다.
<통영시 문헌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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